정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빠르면 유치원서부터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십 수년을 영어공부에 투자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ABCD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당시엔 영어유치원이 없었고, 그나마 사립이라서 조금일찍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엔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영어암송 대회같은 걸 열기도 했었고, 나도 참 열심히 참가해서 상도 타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심사의원으로 왕영은 선생님?이 참석하시어 함께 사진을 찍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기억도 생생하다. 종이를 출력하여 코팅을 하고 주름이 지도록 들고 다니며 외웠던 다이얼 로그. 특별한 언어적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그 어린나이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중학교 이후에도 줄곧 영어는 나에겐 가장 쉽고도 재미있는 과목이 되었다. 1학년때부터 3년간 영어 수업 시간 5분 전에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수업에 필요한 책과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들고 오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TMI:당시 우리 중학교에서는 유일하게 나만 대원외고에 지원했었는데 고배를 마셨고, 고등학교에 입학 후에는 입시위주의 영어로 나의 개인적인 흥미도 점점 잃어갔던 것 같다. 지문 읽는 것도 구찮았고, 시험을 위한 시간 내 독해는 더욱 싫었다.)
그런 상태로 대학에 와서도 내 개인적인 영어실력은 중학교 실력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만 없는, 유창한 것도 아니면서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이도저도 아닌 욕심만 있는 그런 상태 말이다. 다행히? 발음은 나쁘지 않은지 한 문장을 말해도 몬가 잘해보이는 착각을 남들에게 줬던 모양이다. 하지만 영어는 늘 나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몬가 어렸을 때 만큼의 흥미와 탄력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성인이 되고, 외국계 회사를 17년 이상 다니고 있음에도 내 영어 실력은 창피하다. 그렇다고 외국계 회사를 다니지 못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도 아직 이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조금 많이 아쉽게 느껴진다. 사실 어떻게보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영어실력에 대한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꾸준함’이다. 남들 못지않게 숱한 관련 책을 사보고, 학원도 다녀보고, 화상 및 전화 영어, 개인 과외, 온갖 앱을 통한 유료 서비스 이용 등 남들이 해볼 수 있는 건 나도 다 해본 것 같다. 다만 무엇이 방법이 되었든 그걸로 끝장을 본 적은 (부끄럽지만) 단 한번도 없었다.
영화한편을 씹어먹어 본적도 없고, 성인 이후에는 제대로 된 책 한권을 통독한 적도 있는가 싶다. 한국인으로써 해외에서 살거나 근무하지 않는 이상 영어실력을 늘릴 수 있는 데에 한계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어떻게든 해외에 살아보거나, 해외법인에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을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일 테지만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결국 내 시간을 쪼개서 정진하는 법 이외엔 답이 없겠다. 어떤 방법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책이 좋은 지도 나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느낀 한가지는, 관용적 표현을 무조건 많이 외우는 게 좋다. 사실 이것도 옵션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유창함이란 1도 찾아볼 수 없는데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쉬운 단어의 조합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꼭 있다.) 사실 언어라는 게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기에, 그 도구가 비싸건 싸건 이쁘건 못생겼건 그 껍데기는 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기본 문법이라는 게 있는 것이고, 그 기본 문법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뼈대를 갖추는 게 어찌보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기본 문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무척이나 많기에.. 이건 어쩔 수 없는 암기의 영역이다. 어쩌랴 매일같이 알아서 주입해 주는 외국에서 살지 않는 이상, 내가 알아서 듣고 반복하는 수 밖에는 왕도가 없다.
그리고 듣기의 영역과 함께 중요한게 단어다. 알아야 듣고 알아야 쓰는 1차원적 팩트다.
어떤 단어책을 가지고 있는가? 단어책이 없어도 된다. 사실 수많은 영어관련 서적들에는 이미 다양한 표현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너무나도 잘 정리되어 있기에 굳이 별도의 단어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동의한다. 나 또한 영어 책이 많다. 그래서 난 앞으로 평생동안 영어책은 사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 와중에 하나의 예외를 만들어 준 책이 있었으니,
‘영어회화의 결정적 단어들’
![](https://blog.kakaocdn.net/dn/dE01sW/btsFF3Cu4U4/KO0yhk6UuFXjPLV39vhYIK/img.jpg)
영어단어책이 무슨 컴퓨터 알고리즘도 아니고, 특정 단어가 세월이 지난다고 다른 의미가 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다짐한 룰을 깨고 구매한 이유는 하나다. 정말 최소한의 결정적인 단어들의 집합체. 이 책으로 내 인생 영어단어 종결. 이것만 알아도 내가 영위할 수 있는 영어권 삶에서의 모든 단어 커버 가능. 이거다. 당연하겠지만 하루에 혹은 일주일에 정독할 수 있는 책도 아니고 그렇게 읽어서도 안되는 책이다.
틈날때 하루에 한 유닛. 분량이 많지도 않다. 긴 호흡으로 올해 안에 이 책 한권 다 보겠단 생각으로 접근하면 쉽다. 난 일상회화보다 비즈니스 영어가 더 쉽다고 느낀다. 비즈니스 영어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상당 수 포함되어 있고, 논의해야할 내용의 범위가 어느정도는 예측 가능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일상회화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특히나 특정 단어를 모르면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당장 비즈니스 미팅을 잘 끝내고 한식집으로 회식을 갔는데, Visitor가 한상차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김치도 알타리, 부추김치, 배추김치 참 많기도 하다. 물론 그냥 Different type of Kimchi하면 다 그만이지만, 몬가 아쉽다.
그런 대화에서 필요한 결정적 단어들! 그게 이 책의 묘미다.
영어는 제2의 언어이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한 수준까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만 꾸준하게 하면 그걸로 족하겠다.
한 가지 개인적인 목표로는 영어와는 조금 다른 접근으로 일본어와 프랑스어 등 제3의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데..이건 딱 각각의 언어에서 딱 100문장씩만 암기 하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해도 상관없다. 얘기만 할 수 있고 어느정도만 들을 수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런 상태로 일본여행과 유럽여행을 해보면 그 여행자체의 기쁨이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주 방콕 출장으로 블로그 쓰기를 1도 못했다. 역시나 꾸준함이 가장 어렵지만, 그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2024.03.10 돈데크맨